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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카사노바는 페미니스트…굿이어·제라시, 여성해방 박차"
"역사로 보는 1만년 性 이야기…'에로틱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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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투데이 기자 작성일2019-03-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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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세계사

 

 

 

한국인은 성(性)에 관해 가장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민족 중 하나로 인식된다. '모자이크' 처리했으니 AV(성인영화)는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는 모순을 태연히 말하는 일본조차 한국을 성에 관해 언행이 다른 가식적인 나라로 지목할 정도다.

 

성적 주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지만,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시인과 연극 연출가 등 존경받던 명사들이 상상을 넘어서는 일탈을 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사실상 공창 지역을 폐쇄하니 성매매가 사라지는 대신 온갖 변종 업소가 주택가 근처까지 확산하는 현상도 골치를 썩인다.

 

이는 '복잡계'인 현대사회에서 성이라는 문제를 단순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다루기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랜 과거 역사를 봐도 성적 주제는 항상 인류에게 주요 관심사이면서 껄끄러운 문제였다.

 

독일 저널리스트 모임인 '난젠 & 피카드'가 쓴 '에로틱 세계사'(오브제 펴냄)는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고 은밀하지만,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성의 1만년 역사를 기술했다.

 

내용은 상당히 발칙하고 직설적이지만 저속하지 않다. 성을 음침한 술자리가 아닌 밝고 건전한 논의의 장에 올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특히 선사 시대부터 헬레니즘 로마 시대, 르네상스, 계몽주의, 냉전 시대 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성과 관련된 주요 인물과 역사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난봉꾼'과 동의어로 취급되는 카사노바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한 대목부터 새로운 시각이다.

 

역사상 최고 바람둥이로 알려진 카사노바는 자서전을 통해 평생 132명 여성과 관계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노라고 강조했다. '섹스'를 위한 만남이 아니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과 관계했다는 것이다.

 

책은 카사노바에 대해 "여성을 정복하는 일 자체를 즐기지 않았다"면서 "카사노바는 바람둥이이자 페미니스트였다. 강한 여성과 함께 있어야 진정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라고 묘사한다.

 

저자들이 카사노바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게 된 결정적 일화는 이렇다. 볼로냐 대학 한 교수가 여성의 실수를 용서해줘야 하는 이유로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는 자궁의 문제'임을 부각하는 논문을 썼는데, 이는 여성을 의지의 주체로 보는 현대 페미니즘과는 배치된다.

 

이에 대해 카사노바는 "생각이 정신에서 비롯되며 육체에서 나오는 게 아닌데도 논문 저자는 여성의 자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남자의 정액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반박문을 써 공개했다.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가 나오기 전부터 카사노바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성을 자유롭게 즐길 권리를 가졌다고 본 것이다.

 

여성을 임신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콘돔과 경구 피임약의 발명은 코르셋에 옥죄인 여성을 해방한 주요 견인차 중 하나라는 게 중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적인 콘돔은 '타이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가 개발했다. 19세기 초 이미 남미 고무나무 수액으로 만든 단순한 형태의 콘돔이 있었지만, 문제는 추운 겨울엔 딱딱해지고 여름엔 끈적끈적 엉겨 붙었다는 점이다.

 

굿이어는 1855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고무 콘돔을 선보였는데 두께는 2㎜였고 측면에 이음매가 있었다. 특허를 내긴 했으나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인 1870년에야 콘돔은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다만 그의 이름을 딴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가 설립돼 고무 발명가의 업적을 되새겼을 뿐이다.

 

화학자 칼 제라시는 경구 피임약을 발명했는데, 페미니스트를 넘어 '여성 우월주의자'를 자칭했다. 오죽하면 '피임약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거부하고 '피임약의 어머니'로 불러주길 원했을까.

 

제라시가 1951년 개발한 '노르에티스테로'란 물질은 여성 배란을 억제하는 효과가 입증되면서 1960년 '에노비드'라는 피임약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는 굿이어와 달리 피임약 개발로 갑부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몸에 인위적 조작을 가해 제약사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제라시는 "피임약이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 관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면서 "이젠 여자가 성교의 결과를 통제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항변했다.

 

이밖에도 책은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재미있는 일화로 가득하다.

 

인류 최초 포르노 서적은 기원전 1천150년 경 '투린 파피루스'이다. 이 책에는 거대한 음경을 가진 대머리 남자들이 여성들과 관계하는 그림과 음란한 글들이 적혀있다.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디오게네스는 '자위행위 홍보대사'였다고 책은 묘사한다. 그는 결혼을 불필요한 것으로 봤고 매춘부를 경멸했다.

 

대신 자위행위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선의 행위로 봤다. 그는 심지어 아테네 시장 한복판에서 자랑스럽게 자위행위를 했다. 지금 같으면 음란죄 등으로 기소될 일이다.

 

로마 공화정 두 번째 황제인 티베리우스는 여성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는 행위를 즐겼다고 기록됐다. 당시 이는 금기를 넘어 남성으로서 치욕적인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선구적인 파격으로 후세에 인식됐다.

 

계몽주의 시대는 성이 억압받던 시기였다. 심지어 상상 속 간통으로 교수형을 당한 믿기 힘든 사례가 있다. 청교도가 세운 미국에서 17세기 초 일어난 사건이다.

 

1644년 미국 보스턴 시민들은 메리 래섬과 제임스 브라이턴을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래섬은 플리머스라는 소도시 한 술집에서 브라이턴을 만나 술을 함께 마시며 농담 섞은 대화를 나눴다.

 

몇 달 뒤 열이 나 병석에 누운 브라이턴은 나쁜 짓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보스턴 재판소에 출두해 상상 속 간통을 털어놓고 래섬도 그날 밤 체포돼 압송됐다. 두 남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은 지 2주 만에 처형됐다.

 

당시 18세이던 래섬은 교수형 직전 군중 앞에서 자아비판과 공개 사과를 했다. 간통죄가 폐지된 요즘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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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뉴스]고재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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